경제논평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진다?) 

요즘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저출생 혹은 저출산 문제입니다.

보통 현재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을 2.1명 정도로 보는데, 요즘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명 수준에서 간당 간당 합니다. 아무리 기대수명이 늘어 오래산다해도 이렇게 출산율이 낮으면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다보니 2750년쯤 가면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진다는 끔찍한 예측도 나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의 신간 <개혁의 정석>에서 설명했듯, 저는 이런 전망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인구 숫자 늘리기?  어렵지 않아요)

첫째, 토종 한국인이 정말 애를 안 낳아 인구가 급속히 준다면, 이민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겠지요. 대한민국 같은 선진국에 와서 살겠다는 외국인들이 줄을 설 것입니다. 둘째, 사실 정부가 마음만 먹고 국민들이 동의만 해준다면 출산율을 빠르게 늘릴 방법은 널려 있습니다. 예컨대 아이 한 명 낳으면 조건 없이 현금1억원을 준다거나, 반 값 아파트 같이 파격적인 주택 지원을 해주거나, 남자 아이 둘을 낳으면 하나는 병역 면제시켜준다는 식으로 파격적인 유인을 주면 순식간에 출산율은 올라갑니다.

(합리적 정책:  편익과 비용의 균형)

그런데, 이런 과격한 지원 정책을 펴기 어려운 것은 그 편익에 비해 이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겠지요. 합리적인 정책은 편익과 비용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지점입니다. (1) 우선 정부가 쓸 수 있는 예산의 경우 분명한 제약이 있습니다. 출산율 높인다고 예산을 왕창 가져가 버리면 다른 분야에서 문제가 생기겠지요. (2) 나아가 이민의 경우도 이로 인한 득실을 계산해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민 문호를 개방할지 판단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인구정책:  문제 설정부터 새로 해야)

인구 문제의 경우 애초에 문제 설정이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해답이 나올 리가 없지요. 최근 총선(2024.4.10)을 앞두고 각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쏟아내는 출산 대책을 보십시오. 다들 돈을 쓰겠다는 얘기만 하지 (1)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2)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얼마인지, (3) 그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지 등과 같이 반드시 따져야 할 항목을 제시한 정당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동안 수백조 원을 쓰고 별 효과를 못보는 총체적 정책 실패가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인구 수 감소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인구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저는 인구 수 감소는 당장 죽고 살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경우 출산율이 어느 정도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기대 수명 또한 늘기 때문에 인구 숫자 자체는 줄더라도 그리 빠르게 줄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민과 같은 다른 옵션이 있기 때문에 사실 국가가 소멸한다는 식의 얘기는 책임지지 않는 발언에 익숙한 미래학자들의 상상에 불과합니다.

(적정 인구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사실적정 인구라는 개념은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고, 기술 수준이 달라지면  답이 바뀌기 마련입니다. 과거 노동이 핵심 생산력이던 농경사회에선 인구가 적어도 문제였지만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인구가 너무 많아도 곤란했습니다. 몇 단계의 산업혁명이 이어지면서 자본과 기술의 축적과 함께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인구 총량이 예전 같은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발전 수준이나 산업구조에 따라서도 적정 인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스위스와 같이 기술집약적인 산업구조에, 생산성이 높은 나라에서는 적은 인구수로도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유지하며 잘 살 수 있지요. 반면 생산성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에서는 노동의 양이 중요하겠지요.

물론 인구 숫자 자체는 경제 규모(GDP)를 결정하므로 이 자체를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세계 10대 강국에 든다고 말할 때 그 기준은 1인당 GDP가 아니라 총GDP입니다. 그런데 인구 총량은 변하더라도 급작스럽게 진행되기 어렵고, 앞서 말했듯 진정 그 추세가 우려되면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장치가 없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인구구조 변화가 문제의 핵심)

인구구조의 고령화: 전체 인구 대비 연령별 인구 비중

(단위: %)

 

결론부터 말해,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인구 문제의 핵심은 총 인구수 자체라기보다는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은퇴 인구가 늘어나는 인구구조의 변화에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에 비해 부양의 대상이 되는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면 성장잠재력 하락을 포함해 이런 저런 사회구조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생산가능인구인 15-64세 인구의 비중은 201673.4%를 정점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은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는데 2050년에는 약 40% 정도에 이를 전망입니다.

 

(백화점식 문제 나열말고, 쟁점 분명히 하고, 정책 우선순위 정해야)

그런데 인구구조 고령화가 미치는 영향은 분야별로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출산율이나 노인 인구 비중 같은 총량적 수치의 추세나 국제 비교에만 의존해서는 의미 있는 정책 대응을 하기 어렵습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면서 고용, 성장, 교육, 국방, 재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식의 백화점식 문제 나열보다는 분야별로 그 대응책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를 구체화시키면서 쟁점을 선명히 해야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수 있고 예산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병사 숫자 감소?  지원 인력 + 여성 인력)

우선 국방의 경우 징집되는 병사 숫자의 감소가 당장 치명적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해전술을 쓰는 시대도 아닌 데다 군사 기술이 발달하면서 드론 등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예산을 투입해 직업 군인 비중을 늘릴 수 있고,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비전투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습니다.  

(학령 인구 감소? 그렇게라도 교육이 바뀌어야 출산율이 높아진다)

교육의 경우 학생이 없어 문 닫는 학교가 생기고 교육대학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진화라고 봐야 합니다. 사회 환경이 바뀌면 이에 부응해 제도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지요.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은 지식혁명시대에 부합하는 창의력 있는 인재를 배출하기는커녕 교육 공급자들의 기득권 장벽에 막혀 입시 준비를 위한 사교육비 부담만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아가 이런 교육비 부담은 저출생 현상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학생 수의 감소가 입시제도 개편 등 교육제도의 변화를 촉진하는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지방 소멸?  진짜 원인은 출산율 하락이 아니라 교육일자리’)

인구 감소가 지방 소멸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해도 인과관계가 맞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면 상관관계(correlation)가 높다고 말하는데, 이렇다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되는 인과관계(causality)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차피 전체 인구 수의 변동이 없더라도 지방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최근 추세입니다. 서울의 출산율(0.59)이 지방(영광군 1.80)보다 압도적으로 낮은 것을 보면 수도권 인구 집중이 오히려 전체 출산율을 낮추는 역인과관계(reverse causation)’가 성립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 자체를 절대 목표로 삼는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설사 총 인구가 늘어난다해도 지방 인구는 줄어들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방 부활을 위한 정책은 교육 환경이나 일자리 등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생산력 하락과 재정 부담)

이렇게 정리해 나가다보면 인구 고령화 문제의 핵심은 생산력 하락과 정부 재정 부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산가능인구가 지나치게 줄면 아무리 생산성이 높아도 기존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기 어렵고 잠재성장률도 하락할 것입니다. 나아가 일하면서 세금을 내는 젊은 세대의 인구 수가 은퇴 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감소한다면 복지지출의 증가와 함께 정부의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출생 추세는 또 다른 핵심 과제인 연금개혁의 핵심적인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인구 분야 정책은 한편으로 출산율 회복에 초점을 두되 다른 한편으로 저출생 기조의 부작용이 클 수 있는 영역에 우선적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기존의 출산 및 양육 정책을 강화하며 예산을 더 투입하는 점증적 방식만으로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뭔가 합리적이면서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다음 동영상들에서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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